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May 25, 2013

인력 미스매칭

`전략(Strategy)`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인 `Strategus`에서 비롯됐다. 대략 `병력을 움직이게 하다`는 두 단어가 합쳐져 만들어진 용어로 `용병술(用兵術)`과 유사한 개념이다. 군대든 기업이든 사람을 적절히 움직여 전쟁에 승리하는 게 전략의 기본이라는 얘기다.

하지만 아무리 제갈량의 용병술을 지닌 전략가도 쓸 만한 병력이 부족하면 용쓸 도리가 없는 법이다.

한국 산업계가 처한 실상이 바로 이렇다. 적재적소에 데려다 쓸 사람이 부족해 쪼들리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. 고질적인 `인력 미스매칭` 때문이다.

첫 번째 사례. 최근 만난 환경안전 A업체의 고위 임원은 이런 고민을 털어놨다. "현장 직원들의 노후화가 심각해요. 57세 직원이 아직도 용접을 해야 할 정도로 후임자가 없습니다. 용접ㆍ배관 배우겠다고 손드는 젊은이를 찾아볼 수 없어요."

A업체 용접공은 매달 500만~600만원을 벌고 회사 정책에 따라 60세까지 정년을 보장받는다. 하지만 `노가다` `쟁이`에 대한 편견이 한국사회 도처에 깔려 있다.

반면 번듯한 유통매장, 금융권, 방송계의 계약직이나 인턴직에는 연봉이 2000만~3000만원을 밑돌아도 젊은 인력들이 몰리는 게 현실이다.

두 번의 불산 누출 사태로 홍역을 치른 삼성전자가 반도체 공장의 환경안전 대책을 세우면서 가장 신경 쓴 게 이 분야의 우수인력 확보다.

삼성전자 환경안전 협력업체의 정규직 비중은 20~30%에 불과하다. 협력사들이 고정비용 부담을 덜기 위해 일용직을 끌어다 쓰는 일이 다반사라고 한다. 원도급업체 입장에선 협력사 직원 교육이나 장기적 안목의 안전관리가 쉽지 않은 것이다.

급기야 삼성전자가 300여 명의 환경안전 전문인력을 직접 뽑기로 한 건 그만큼 환경안전 업계의 기술인력이 빈약하다는 방증이다.

B대기업의 한 임원도 "과도한 과징금을 물리는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이나 정부의 화학사고 예방대책으로 해결하기 힘든 본질적 문제가 환경안전 우수인력의 부족"이라고 꼬집었다.

인력 미스매칭의 두 번째 사례는 소프트웨어 인력 부족이다. 창조경제를 이끌 일꾼이라며 산업계가 주목하지만 정작 뽑아 쓸 사람이 부족해 해외에서 충원해야 할 판이다.

삼성이 인문계 전공자들을 뽑아 소프트웨어 인재로 키워내겠다고 한 것도 인력 미스매칭에 원인이 있다.

명문대 인문계 졸업생도 삼성 공채에 판판이 떨어질 정도로 인문계 인력은 넘쳐난다.삼성 공채로 뽑는 인원의 80~90%는 이공계지만 학생들의 이공계 기피 관행이 고착화되면서 적정 인력 확보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다. 남아도는 우수 인문계 자원을 삼성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인력으로 재교육하는 실험이 `삼성 통섭형 인재` 채용의 숨은 배경이다.
생산ㆍ기술직을 외면하고 화이트칼라를 좇는 한국 사회의 오랜 고질병을 치유할 방법은 없는 걸까. 전략을 펼치려 해도 용병술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인력 미스매칭의 문제. 이게 한국 산업계의 갑갑한 현주소다.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 -산업부(황인혁 차장)